2002년 정규리그 순위 4위에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트에서 2,3위를 물리치고 코리안시리즈에서
삼성의 이승엽 선수에게 통한의 동점홈런과 마해영 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준우승으로 2002년
시즌을 마감하였지만 정규리그 4위에서 준우승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감독과 선수에게 격려를 해주고
다음시즌에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여야겠지만 구단과 감독이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만료가
되지 않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 뒤를 이은 2002년 후의 LG감독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LG트윈스가
정규리그 하위권을 맴돌면서 가을야구를 잊어버리게 하는 흙역사의 시작 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 LG트윈스 야생마 이상훈 선수 가 이순철 감독과의 갈등만 없었다면 이상훈 선수 또한
LG트윈스의 영구 결번 선수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드는 지나간 시간이었습니다
프로야구 LG트윈스 2003년 시즌
스토브리그
2002 한국시리즈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팀을 정규시즌 4위에서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은
그의 야구 스타일이 LG의 '신바람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 만료 기간을 1년 앞두고 경질당했다.
이에 LG팬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훗날 노리타들에 의해 상당히 윤색된 이야기들이고
실제로는 LG 팬들 역시 김성근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지 못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특히 김성근의 번트 위주의 스몰 야구는 '신바람 야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던 골수 LG 팬들에게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성근의 후임으로 1994년 신바람 야구로 LG 트윈스의 우승을 이끌었고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고 있던
이광환 감독이 7년 만에 LG로 컴백하게 되었다
한편 LG는 이광환 감독 선임 발표에 앞서 김성근 사단으로 분류되었던
이홍범, 이철성, 세이케 마사카즈, 권두조, 김태원, 고정식 코치를 내보냈다
다만 이상훈은 김성근의 경질을 반대했고 이는 이상훈이 팀에서 사실상 버려지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2002년 12월 1일 자로 코칭스태프 개편이 단행됐다.
김영직 1군 외야코치, 황병일 2군 타격코치, 송구홍 2군 수비코치, 정삼흠 2군 재활담당 코치 등 4명을 새로 영입했다.
1군의 양상문 투수코치, 김상훈 타격코치, 김용국 수비코치는 유임됐으며
2군에 있던 이순철 작전 및 주루 코치는 1군으로 올라왔다.
박철영 1군 배터리 코치도 유임됐으며 2군 김용수 투수코치는 2군 책임 코치를 겸임,
권두조 2군 감독의 빈자리를 메웠다
1군
투수 양상문, 타격 김상훈, 작전 및 주루 이순철, 외야(수석) 김영직, 불펜 박철영
2군
투수 및 책임 김용수, 타격 황병일, 수비 송구홍, 작전 및 주루 노찬엽, 재활 정삼흠
외국인 구성으로는 매니 마르티네스와 재계약하고, 투수 용병 라벨로 만자니오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3년 전 부상으로 퇴출되었던 브렌트 쿡슨을 재영입했다
1999년 2차 6라운드에 지명받았던 인하대의 투수 정재복과 계약금 1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에 입단 계약했다.
정재복을 제외한 나머지 기지명자는 모두 지명권이 풀렸다
이종열이 FA 자격을 취득했고 4년 13억 원에 잔류했다
신인 선수
1차 지명: 박경수(성남고, 내야수)
2차 지명: 1라운드 - 이성열(효천고, 포수), 2라운드 - 이대형(광주일고, 외야수),
3라운드 - 우규민(휘문고, 투수), 4라운드 - 이경민
2003년 LG트윈스 정규리그
지난해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불구하고 신바람 야구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
이광환 감독을 7년 만에 컴백시켰다.
시즌 초부터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좋은 투수력에도 불구하고 엇박자가 심했다
김재현은 고관절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전반기를 통째로 쉬었고 FA 직전인 유지현은 커리어 최악의 부진,
지난해 신인왕 후보 박용택은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다.
또한 2000년 부상으로 인한 퇴출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브렌트 쿡슨은 해결사 역할은 전혀 해주지 못하고
볼넷만 고르다가 한 방 두를 당했다.
급기야 전반기 타격을 이끌던 이병규마저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고,
해결사 노릇하던 젊은 피 김상현도 강습타구로 인한 손등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며 안 그래도 약한 타선은 더욱 약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구단 역사상 최악의 타격성적을 기록했다.
이 해의 타선을 이끈 선수는 외국인 듀오 매니 마르티네스와 대체영입이지 알칸트라,
그리고 19 홈런으로 첫 두 자릿수 홈런을 올리며 커리어 하이를 쓴 포수 조인성이었다
투수력은 ERA 3.98로 8개 구단 중 KIA 다음으로 방어율이 낮았다.
데뷔 이후 제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승호가 기량을 만개하여 11승과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불펜에서는 이동현과 장문석이 지난해만큼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전승남과 류택현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마무리 이상훈은 시즌아웃 전까지 세이브 1위 및 구원선두를 기록했지만 멀티이닝 소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따금씩 크게 불을 질렀다.
선발에서는 김민기가 아예 개점휴업하고 최원호가 초반 반짝 후 드러누웠지만
장문석이 선발 전환 후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김광삼과 김광수는 초반에 잘 던졌으나 갈수록 힘에 부치는 모습이 나왔다.
확실한 연패스토퍼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어 6연패 이상의 장기 연패가 속출하는 원인이 됐다.
사실 시즌 중반에도 순위만 4위였지, 오히려 승률은 5위 KIA보다 낮았던 날이 많았다.
다승제 제도였고 KIA가 우천으로 인해 경기수가 적어서 다승에서는 KIA보다 앞섰지만 승률에선 뒤졌었다.
결국 KIA가 마지막 두 달 엄청난 페이스로 승을 쌓자 LG는 자연스럽게 4강권에서 멀어졌다.
물론 한화한테도 따라 잡혀 6위로 마쳤으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실망스러운 한 해를 마친 뒤 이광환 감독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생겼고, 이해 SK의 신임감독으로 부임했던
조범현이 SK의 첫가을야구를 이끌자 프로야구 40대 기수론의 바람이 불었다.
선동열이 해외 지도자 연수 후 귀국하자 선동열을 두산과 LG는 그를 감독으로 모시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정작 선동열의 행선지는 스승 김응용이 감독으로 있던 삼성이었고, 두산과 LG는 각각 김경문과 이순철을 선임했다.
이순철을 감독으로 내세우며 LG는 제2창단을 선언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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