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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에 일상생활

아베신조의 피살과 한국계 도래인 후손설

by mostheri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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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저격 사망 

한국과 일본은 거리상 가까운 나라이나 심적으로는 매우 먼 나라이다 

한국사람 치고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 그다지많지 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 대한민국에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위 바위 보 를 해서도 절대로 지기 싫은 나라이고 

자기반성을 모르는 그런 패륜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되면 특히 우익을 대표로 했던 아베 신조

의 저격 사건을 저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고 오래간만에 하느님이 나쁜 놈 빨리 데려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저에 솔직한 생각입니다 

일본 이란 나라는 세계 모든 국가 가 마찬가지겠지만 지도자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혼란한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혼란한 정국을 외부로 돌리려고

중국을 정복하러 갈터이니 길을 비켜달라? 섬나라에서 어디든지 배를 타고 가야 할 것을 배 타고

바로 중국으로 가면 되는 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이 하면서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피로 물들였고 대동아 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 반성하지 않는 섬나라 쪽발이 민족!

일본의 문제점은 그 시대에 어떤 지도자가 나타나는가에 따라 문제가 발생되는 민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베 신조 이전 수상들 중  무라야마 도미이치(81대), 고이즈미 준이치로(89대) 등은 일제 36간의 

지배 나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한산면 아베 신조가 수상이 된 이후로 역사를 왜곡하는 우익 성향

들이 일본을 지배하여 지금 역사를 배우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조상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뉘우칠 기회마저 주지 않는 그런 시대를 만들었던 일본 지도자가 아배 신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길바닥에서 그렇게 비명횡사를 하는 게 아닐까요? 한마디로 천벌이지요!)

 

아베 신조에 대한 자료입니다 

일본의 정치인.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전후 세대 출신의 첫 번째 총리이자 전후 최연소 총리, 그리고 역대 최장 기간 집권한 일본 총리

기록을 보유한 인물.

또한,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총리이자 레이와 시대의 첫 총리이며, 일본 역대 내각 총리 중,

7번째로 암살당한 전/현직 총리이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뒤를 이어 처음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제1차 아베 내각).

그러나 지나치게 빨랐던 정치적 성공 탓인지 여러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권위가 실추된 데다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 단 1년 만에 사퇴하면서 단명 총리로 남았다.

하지만 이후 자유민주당 출신의 후임 총리들도 1년 이하의 임기로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었고, 민주당 총리들 역시 단명 내각을 이끌며 3년 만에

지지율이 급전직하하였다.

결국 2012년 12월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의 승리로 정권 교체에 성공, 총리에

복귀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한다(제2차 아베 내각).

2년 뒤인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5년 뒤인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다수 의석을 그대로 유지하였다(제3, 4차 아베 내각).

정치 측면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임기 종료 이후 약 7년간 회전문 총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정했던 일본 의원 내각제를 탄탄한 지지율을 기반으로 안정시켰다.

경제 측면에서는 단단한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아베노믹스라는 이름의 강력한 양적 완화 정책을

실시하여, 일본의 경제를 상당 수준 활성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외교 측면에서 아베는 미국에게, 러시아, 중국, 북한을 위시한 반 서방 세력 견제의 매우 중요한

조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아베노믹스나 아베 독트린이 국제 사회에서 별 잡음 없이 통과된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다고

보면 된다.

반면, 한국과 중국에서는 아베 신조의 그릇된 역사관을 이유로 들어 양국 관계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판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과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들이 합사 된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를

강행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계속 공물 봉납을 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주변국의 반발을 부르고 있다.

실제로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의 회원이다.

또한, 군사적 측면에서는 일본의 재무장 및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신냉전 구도의 당사자인 중국은 당연히 이를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동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를 일본 군국주의 발흥의 전조 증상이라며 비판에 가세하는 중이다. 

G7 서방국가들의 ‘요구’와 일본 내 우익의 '요구'에 응하 여진 행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경기가 나아져 매년 늘어난 GDP와 세수액 및 예산을 비교해 본다면 비록 매년

증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1%대 군사비를 지출하는 일본은 오히려 한국(GDP 대비 2.6%)이나

중국(GDP 대비 2.0% [23])과 비교하였을 때 양호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볼 수 있다.

2020년 8월, 1차 사임 때와 같은 이유인 지병 문제로 8년 만에 총리를 사임하였으나 여전히 당내

최대 파벌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영수이자 당내 실세로서 힘을 발휘했고 후임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와 기시다 후미오를 총리로 만드는 데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제49회 총선 이후 기존 파벌 회장 호소다 히로유키를 중의원 의장으로 보내고 자신이

직접 회장에 취임하여 정계 영향력을 과시했으나, 2022년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피살당하였다. 총리 재집권에 성공한 2012년 12월에서 9년 7개월 만이었다.

 

총리를 그만두면서 전쟁을 할 수 있는 헌 번개헌을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고 말하는 군국주의자 

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동등한 조건에서 일본과 전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실 모르는 게 많아서 그렇지 일본이 36년 동안 우리 민족

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는지 그것을 모든 국민이 안다면 일본과는 절대로 상종하지 않을 것이며

저 개인적인 생각은 지진으로 빨리 바닷속으로 가라앉잤스면 하는 생각입니다 

 

자료를 찾다 보니 이런 내용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 한국계 도래인 후손설

보수 성향 정치인임에도 뜻 밖에 한국계라는 떡밥이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보통 넷 우익들의 한국계 드립은 하토야마 유키오나 간 나오토같이 진보 성향의 정치인에 치는
경우가 많고, 자민당 내 온건 보수파로 일본 수상을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와 같은 거물급 정치인이
직접 한국계 도래인 후손임을 언급한 경우도[57] 있기는 하지만 아베 신조는 강경 우파 성향임에도
한국계설이 나돈다.
대표적으로 참의원 선거 때 파칭코 업계에게 5천만 엔의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파칭코나 야쿠자 정치 자금설은 어느 정치인에게나 흔하니 비방성 루머로만 그쳤지만 한국계 떡밥을
결정적으로 불지핀 것은 아베 신조 1차 내각이 나온 2006년 9월 주간 아사히가 아베가에서 40년간
가정부로 일해온 구보 우메와의 인터뷰에서였다.
2006년 주간 아사히는 10월6일자 커버스토리에서 '아베 신조 연구-가정부가 본 아베.기시3대'라는
제목으로 아베 총리 가문의 내력을 특집 보도하였고 한국 언론에서도 이를 인용해 보도하였다.
기시와 아베 가문에서 가정부로 40여년을 지냈던 구보 우메(80)는 슈칸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부친 아베 전 외상이 고백한 집안 내력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구보는 "파파(아베 전 외상)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게는 말해줬다"면서
"(아베 전 외상 사망 직후) 입관될 때 이 사람의 골격을 보면서 정말 일본인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로 잰 듯이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완전히 한국(인)의 체형이다. (
아베 전 외상) 스스로도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은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정치인으로서 주변에서) 인기가 높았으며 따라서 좀더 건강하게 활동할 시간이 있었더라
면 북한 문제도 해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베 전 외상의 죽음은 나라의 손해였다"면서 애석해했다.
이 잡지는 아베 전 외상은 생전에 아베가(家)의 기원은 10세기쯤까지 한반도 북쪽에서 중국 대륙에
걸쳐 존재했던 발해국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에서의 아베가의 기원은 분명치
않다고 보도했다.
아베가의 기원에 대해 구보는 "아베가의 본류는 아오모리현이다.
아베 전 외상이 조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지금의 북한이 아니라 그 북쪽과 길림성 아래쪽에
있었던 발해"라면서 "11세기 헤이안(平安) 시대의 무장이었던 아베가 지금 아베가의 선조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도 아베 총리를 끔찍히 아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구보는 아베 총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쿄의 기시 전 총리의 자택에서 가정부로
지냈으며, 지금은 따로 나와 도쿄에서 살고 있다.
아베 일본 총 아베 신조의 한국계 집안 설은 외가 쪽에서도 나왔다.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총리[59]의 동생인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총리와심수관
14대의대화에서다.
김충식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2006년에 발간한 책 <슬픈 열도-영원한 이방인 사백년의 기록>의
내용에서, 임진왜란 직후인 1598년 일본에 끌려간 도공으로 일본의 도자기 종가를 이루게 된
심수관(沈壽官) 가문의 14대 후손을 인터뷰하는 과정 중 1964년부터 72년까지 일본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1901~75)가 죽기 1년 전 자신을 찾아와 사토 집안도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한국계임을 직접 고백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4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가문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임을 추정케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964~1972년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에게서다.
지금도 그의 거실에는 사토 전 총리가 써준 휘호가 걸려 있다. ‘묵이식지(默而識之)’라는 글씨
곁에 ‘심수관 선생에게, 갑인년 봄 에이사쿠’라는 서명이 적혀 있다. 갑인년은 1974년을 뜻한다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심수관 14대는 같은 얘기를 한다.

14대는 사토 전 총리가 이 휘호를 써준 날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사토 전 총리는 차를 대접받은 뒤 “좋은 차였습니다”라고 인사하고는 “수관 씨, 몇 대째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14대입니다”라고 하니 “저는 좀 더 짧을 겁니다.

당신네는 게이초(慶長·1596~1615년) 때 왔는데 우리 선조는 그 뒤에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붓과 벼루를 청해 글씨를 써줬다는 것이다.

묵 이식 지는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은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14대는 “그 말의 진위를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사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山口)는

예로부터 조선반도와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라 가능한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토 에이사쿠는 아베 현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친동생이다.

1975년 세상을 떴다

이와 관련해 사토 에이사쿠와 아베 신타로, 아베 신조는 생전에 공개 석상에서 자신의 집안이

한국계 도래인 후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직접 발언한 적은 없다.

2006년 주간 아사히가 구보 우메의 증언에 대해서 보도한 이후 아베 신조가 공식 기자회견 등
공개 석상에서 주간 아사히의 보도 내용에 대해서 긍정을 하거나 부정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아베 신조가 주간 아사히의 보도 내용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존하는 일본 내 사료(史料) 중에서 사토와 아베 가문의 시조가 도래인이라고 기록된 사료가
발견된 적은 없다.

설은 설로 끝나는 것이지요 저런 호래자식 같은 너무 조상이 한국인이라는 게 말도 안 되는데 

한국인으로 이런 미친년도 있어서 참 답답합니다 

일본 성으로 개명하고 일본에 살던지 왜 대한민국 국기를 듣고 이 지랄을 하는지 하느님이 

조만간 이런 미친년도 데려가 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베 수상님 사죄드립니다 하고 말하는 주옥순 미친년 

아베 수상님 사죄드립니다 하고말하는 주옥순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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