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야구에서 뜨는 단어 가 원클럽맨입니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중년의 나이 40년 을 넘은 지금 선수가 은퇴하면서 각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선수가 구단마다 3~4명에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0,90 년대에는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 후 프로야구에 입단하는 선수
일반적이었지만 1990년 후반부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야구에
입단하는 선수가 많아져 자기 관리만 잘하면 20년 동안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20년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만큼 자신관리를 잘해야 하면 또 그에 따른 개인 성적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프로 야구 생활을 끝날 때까지 스타플레이어로 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LG트윈스는 2022년까지 1호 김용수, 2호 이병규, 3호 박용택 4호로 에상되는 선수가
오지환인데 은퇴하는 그날까지 부상 없이 꼭 LG트윈스 4호 영구 결번이 되길 기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LG수호신으로 이상훈 이 감독과의 불화만 없이 LG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면 이상훈 선수가 영구결번 4호가 되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LG트윈스를 향해 나는 공을 던질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하고
연봉 5억을 포기하고 은퇴한 LG트윈스 삼손 이상훈 선수가 참 아쉽습니다
오늘은 LG트윈스 영구 결번 2호 적토마 이병규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불 방망이와 빠른 발을 지닌 LG트윈스 적토마 이병규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삼성 라이온즈 수석 코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
전성기 시절 이병규의 컨택 능력은 리그에서도 압도적이었으며 높은 볼부터 거의 바닥에
처박히는 볼까지 일단 휘둘러서 공을 맞히고 보는 타입으로, 컨디션이 좋을 때의
이병규는 별 희한한 공까지 안타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덕분에 통산 타율 자체는 한국프로야구 역대 4위(0.314)에 올라 있으나, 배드볼 히터
특성상 볼넷 숫자 또한 적어서 출루율은 커리어 내내 4할을 넘겨본 적이 없다.
전성기 시절에는 잠실구장을 쓰면서도 30 홈런을 달성하는 등 상당한 장타력을 과시했으며,
그 이후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정도의 홈런은 기록한 선수.
단, 2003 시즌의 무릎 십자인대 파열 이후 주루 능력은 많이 떨어져서 그 이후 도루에 관해 내세울 만한 기록은 없다.
타격뿐 아니라 수비 면에서도 역대급의 외야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괴물같은
타구 판단능력에 기반한 위치 선정이 특기로, 타자가 공을 치면 낙구 지점에 미리 가서
만사 귀찮은 듯이 글러브만 살짝 뻗어 잡아내는 수비가 일품이다.
설렁설렁하는 것 같아 보여도 타구 종착 지점에 이미 가 있기에 문제가 없다.
센스뿐 아니라 빠른 발과 강한 어깨 등으로 신체조건 또한 좋아서, 많은 야구인들도
역대 외야수 중 손꼽히는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요약하자면 이순철에 이은 소위 라면 수비의 계승자.
특징으론 잡지 못할 공은 상술한 빠른 타구 판단능력에 기인해, 세컨드 플레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특유의 성의 없어 보이는 움직임과 합쳐져
싸이에 달린 댓글로 인해 '동네 슈퍼에 라면 사러 가는 것 같은 수비'라는 말이 퍼지며
까이게 되어 라면 사러 가는 병규(라뱅)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이는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타격 부진과 한일전에서의
실책성 플레이를 하여 평소에 야구를 보지 않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병규의 타격폼도 언뜻 보면 성의 없게 멀뚱멀뚱 서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수도.
최근에 이런 풍평피해를 받고 있는 선수는 바로 양의지이다.
1997년 프로 데뷔전부터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는데 다름 아닌 경기 후 인터뷰 때 했던 도발성 발언.
해태 타이거즈와의 시즌 홈개막전에서 상대 투수였던 조계현에게 4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른 것 까진 좋았지만, 경기 후 인터뷰 도중 했던 말이
"신인이라고 봐주지 마시고 성의 있게 던져 주셨으면 좋겠다."
이 흠좀무한 인터뷰에 해태 선수단은 물론 팬들도 난리가 났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아주 가루가 되다 못해 나노 분자가
될 때까지 까였을 경솔한 발언.
LG 트윈스 선수단도 다른 의미에서 난리가 났으며, 바로 다음 날 코치진들이 직접 이병규를
데리고 해태 덕아웃에 와서 정중히 사과함으로서 일단락되었다.
참고로 당사자인 조계현이 이 때를 회고하기를 후배 투수들이 많이 화가 나서
"(빈볼을) 어디에다 맞히면 되느냐?"고 물어왔지만, 조계현 본인은 이병규의 이런
당돌한 패기가 마음에 들어 "그러지 말고 그냥 삼진으로 잡아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실 이병규의 저 발언이 진짜 선배를 도발하려는 의도였다기보단, 일종의 말실수였다는 걸 이해해 주고 넘어간 셈.
이병규 본인도 어지간히 데였는지 은퇴 당시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지금 돌아보면 자기가 생각해도 황당한 인터뷰였다고.
1998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병규가 친 타구를 강동우가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히면서 무릎 골절을 당해 선수 생활을 망치다시피 한 부상을
입었을 때 손으로 목긋기 제스처를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당시 심각한 부상인줄 몰랐고, 코치에게 자신이 아웃되었냐고 묻는 의미로 사용한
제스쳐라는 해명을 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이 영상으로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남은 지라...
타 팀 팬들이 이병규의 멘탈에 의구심을 품게 한 대표적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강동우는 사건이 일어난 지 15년이 넘은 2014년 베이스볼긱과
한 인터뷰에서도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굉장히 섭섭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사건이 지난 후에 서로 관계회복을 했다면 모를까, 사건 당시에 아무런 오해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LG가 계속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듯 선배인
김용수에게 술먹고 전화해서 하소연 하면서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3년에 오랜만에 포스트시즌 진출하면서 나아진 듯.
그리고 현재 LG 소속 선수로서 가을 야구를 가장 많이 치른 선수가 바로 라뱅이다.
이병규는 3번의 한국시리즈를 포함 총 6번이나 가을야구를 LG 선수로서 경험하였다.
그리고 주니치에서는 우승도 했다.
시드니 올림픽을 뛰었던 시절 동메달 결정전때 8회말 극적으로 이승엽이 2타점 2루타를
치면서 결승 득점을 하고 돌아오면서 다음 타자인 김동주 에게 엉덩이를 때린 적이 있다.
같은 팀에 7번을 단 작뱅 이병규가 있기 때문에 가끔 가다 분신술을 썼다는 등의 개드립이
나오곤 하며, 실제로 2010년 5월 1일 SK 와이번스 전과 2011년 8월 2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한 이닝에 두 선수가 홈런을 같이 친 적이 있다.뱅투뱅
2013년 11월 24일에 방영된 런닝맨 초능력 특집에 출연해서 예상치 않은 예능감을 보였기
때문에 이병규를 처음 본 사람들은 호감이 간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마법진 자세를 LG트윈스 러브 페스티벌에서 그대로 재현했다(…).
본인 말로는 두 아들이 런닝맨을 좋아해서 출연했다고 했으며, 한 번 하는 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악역의 이미지를 부각된 영화배우 안길강과 은근히 닮았는데 묘하게도 안길강은 LG 트윈스 팬이다.
공교롭게 이병규 부친의 이름이 이길강이다.
미인 아내를 두었으며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가족 사랑이 대단해 현역시절 헬멧 오른쪽에 아내의 성씨(RYU(류재희))와
두 아들(SM(이승민), SE(이승언))의 이니셜을 썼었다.
이 중 첫째 이승민은 현재 휘문고등학교에서 외야수로 활동하고 있다.
투타도 아버지와 똑같은 좌투좌타
다소 와일드한 이미지 덕에 목소리가 걸걸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목소리 톤이 높다.
반대로 푸근한 이미지를 가져 목소리가 좀 상냥할 것으로 보이는 이진영은 목소리가 상당히 걸걸한 편.
KBO 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싸인매너가 별로 좋지 않은 걸로 유명하다.
유독 엠엘비파크나 디시인사이드 등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코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선수로 꼽히는 불가사의한 여론이 많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안티들만 이러는 게 아니라 충성도 높은 LG 팬들까지도 이런 글을 올리는 게 자주 보인다.
이병규가 타격코치가 되면 "내가 치는 거 봐봐! 공이 딱 오지? 그럼 치면 돼! 쉽지?"라고 할 게 뻔하다는 게 그 이유.
이 점은 이병규가 확실히 자신만의 노하우로 놀라운 컨텍 능력을 가졌지만
이런 스킬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유도 있지만, 왠지 이병규는 성격상 이럴 거
같다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이 배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2015년 시점에서도 코치 생활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무능하고 실패하는
코치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능력보다는 철밥통이나 붙임성으로 자리를 지키거나 거기에
안주해 코치로서 자신의 코칭을 발전시키는 데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거나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독불장군형들이 주로 이런 실패한
감독 & 코치의 유형임을 생각해볼 때 벌써부터 이병규가 코치하면 무조건 실패할 거라는
결론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며, 누구든 간에 지도자가 돼서 많은 공부와 실패에 대한 피드백을
잘하고 발전해 나가려는 노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니 벌써부터
지도자로 성공 & 실패를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LG 트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팀을 이끄는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실제로 부상 등으로 LG 트윈스 2군에 내려가게 될 때 2군 후배들이 불편해 하는 사항들을
구단에 즉각적으로 알려 시정 요구를 했다.
2014년에 다리 부상으로 3개월간 구리 챔피언스 파크에 내려가 있을 때 2군 후배들이
이른 시각 + 짧은 식사시간으로 불편해 하자 구단 담당자에게 곧바로 보고해 식사시간을
조절케 했으며 1군 선수들에게만 LG전자의 휴대폰이 지급되자 구단측에 2군 포함한
전 선수들에게 LG전자 휴대폰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한 이도 이병규였다.
팀 후배 박용택을 극찬하면서도 경계했다.
"용택이가 내 기록 다 깬대"라며 웬만한 자신의 개인 대기록을 깨뜨릴 주인공으로 인정했다.
실제로 박용택은 19년을 뛰었고 이미 2000안타를 포함해서 여러 기록을 넘어섰다.
은퇴시 본인이 꼽은 야구 인생의 결정적인 네 장면으로 1997년 데뷔전 후 도발성
인터뷰 사건과 2002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 2013년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순간과
2016년 10월 8일의 현역 마지막 경기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