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지는 MBC 청룡
서울을 연고지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MBC 청룡은 잦은 감독 교체와 소통이 되지 않는
구단 프런트 사이의 마찰로 선수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1984년부터 하위권에서 맴도는 그런
구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단체 스포츠라는 게 선수들의 의기 의욕에 따라 성적이 향상되는 것인데 잦은 감독 교체와 선수단
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런 구단에서 성적을 상위권에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헤태 구단 같은 경우 다른 구단에 비해 재정력이 약하면서도 최다 정상에 오른 것은 선수들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었던 명장이며 한 팀에서 최장수 감독을 지냈던 김응룡 이란 명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코리안 시리즈 최다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MBC 청룡은 1990년에 LG에 매각되어 LG 트윈스가 90,94 시즌에 우승을 하지만 그 후 28년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전 MBC 가 시행했던 그런 시스템을 그대로 운영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야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제 말이 모두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LG팬으로서 프로야구 원년
부터 MBC 청룡과 LG 트윈스를 포스팅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MBC 청룡 1987년 프로야구 시리즈
김동엽 감독의 계약이 만료되는 상황이었지만 1년 연장하여 유임했다. 역시 계약이 만료되는
미즈타니 히사노부 투수코치와 계약금 1460만 원, 연봉 4000만 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김재박이 플레잉코치가 되었다.
시즌 전 우승후보로 평가를 받았으나 4월 4일 OB와의 잠실 홈 개막전에서 지난해 신인상을
수상한 에이스 김건우를 내세우고도 상대에게 선발 전원 안타를 헌납하며 11:2 참패를 당했고,
다음날에는 코치 겸 플레이어가 된 김재박이 1경기 3 실책을 적립하며 연장 11회에서 김용수가
무너지고 2연패를 당했다.
삼성-해태 원정에서도 마운드가 연이어 무너지며 충격의 개막 5연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4월 10일 해태 원정 2차전에서 개막 6경기 만에 이광은의 연장 10회 투런포로 간신히 시즌
첫 승을 신고할 수 있었지만 4월 11일-12일 빙그레와의 주말 원정경기에서 11일 경기는 박흥식의
맹활약과 김건우의 첫승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다음날에는 김태원이 무너지며 2:11에서 10:11까지
추격했음에도 경기를 뒤집지 못하고 2승 6패로 최하위 후보 청보, 빙그레에도 뒤쳐진 꼴찌에
머물게 되었다.
투수는 난타, 타자는 빈타. 투타 양면에서 맥을 못 추렸다. 다행히 부진은 길어지지 않았다.
4월 14-15일과 18-19일 롯데-청보와의 잠실 4연전을 모두 쓸어 담더니 21일-22일 사직 롯데 원정
에서도 모두 이기며 6연승, 최하위에서 단숨에 단독 2위까지 도약했다.
초반 5연패 과정에서 2패를 당했던 김용수는 1승 4세이브를 올리며 정상 궤도로 돌아왔고,
4월 21일 노장 이선희는 33세의 나이에 사직에서 롯데를 상대로 5.1이닝 2 실점으로 1년 7개월
만에 승리를 맛봤다.
이날 상대 투수는 청룡의 천적 최동원이었는데 청룡의 장효조로 기대받던 데뷔 2년 차 박흥식은
그 최동원을 3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두들기며 그에게 완투패를 안겨주었다.
투타가 잘 맞기 시작하자 6연승이라는 성과로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6연승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고, 예전처럼 급격한 연패는 없었지만 6연승 기간 동안
승리가 준 짜릿함 덕분에 돌아보지 못했던 피로가 누적되며 연승이 깨진 이후, 다시 긴 연승으로
이어가지 못했고, 그 사이 서울 라이벌 OB와 해태가 청룡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영건 에이스 김건우는 지난해 투수 전향 1년 차 200이닝을 넘긴 탓에 부상과 부진으로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고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정삼흠이 작년의 부진을 딛고 투수진에 힘을 보탰지만 승운이 지독하게 없었던 85년처럼
운이 없었다.
지난 시즌 구원왕 김용수와 마당쇠 유종겸도 이탈해있는 기간이 많았고 원년 마운드를 지켜주던
하기룡과 이길환도 존재감이 떨어졌다.
최고의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재박도 수비코치 겸임을 한 이후 부담감을 느꼈는지, 의욕이
과했는지 에러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사령관이 흔들리자 청룡의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점차 성적은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전반기
초중반까지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롯데에까지 순위가 밀렸고 창단 2년 차인 빙그레에도 밀려
6위까지 떨어졌으나 막판 빙그레를 따돌리고 5위로 마감했다.
올스타전 이후 후기리그 시작하기 직전인 7월 10일 김동엽 감독이 경질되었고 유백만 2군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하지만 유백만 감독대행은 직함만 감독 대행인 얼굴마담일 뿐 실질적인 선수단 운영 권한은
투수 파트의 전권을 가지고 있었던 미즈타니 히사노부 코치에게 돌아갔다.
감독 불신임을 놓고 공식적으로 투표를 한 건 아니었고, 구단 고위층에서 몇몇 선임급 선수들을
비밀리에 불러 김동엽의 재신임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전부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웠다고 한다.
이런 짓을 하는 구단 , 선수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7월 14일 후기리그 개막전이었던 대구 삼성전에서 김상훈의 멀티 홈런과 김건우의 완투승으로
7-2로 승리하며 산뜻하게 시작했지만 이후 뜻하지 않은 5연패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김상훈이 연일 홈런을 터뜨리고, 이광은이 타점을 쓸어 담고, 김건우가 6연승 행진으로
전반기 부진과 부상을 만회했고, 전반기 늑막염으로 자리를 비웠던 유종겸도 뒤늦게 승리를
거두며 마운드에 큰 힘을 보탰고, 뒷문은 김용수가 철벽 모드로 막아주며 투타 밸런스가 맞기
시작해 상위권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을 하기 시작했다.
신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기 시작한 청룡은 은 마침내 8월 19일 선두였던 삼성을 꺾고 후기리그
단독 선두에 올랐고 해태, 롯데와 함께 하루 지나면 순위가 바뀌는 치열한 상위권 다툼을 전개했다.
9월 초 청룡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1위 삼성과의 격차는 조금 벌어졌지만, 2위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고, 이를 수성하는데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21경기 남은 상황에서 11경기가 하위권의 빙그레-청보였고 최고의 에이스 선동열과 최동원을
보유한 경쟁팀 해태와 롯데가 단기전에 강한 것을 알고 있는 전후기 1위 한국시리즈 예약팀
삼성과 전기 2위로 플레이오프를 예약한 OB의 견제 또한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순조롭게 플레이오프를 향한 행보를 걷고 있었고 청룡은 이미 지난해 후기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한 끗 차이로 아쉽게 탈락한 아픔을 겪은 바 있어 좀 더 경기 준비에 만전을 가했다.
9월 12일 대구 삼성 원정을 가기 전 승리 요정인 에이스 김건우를 서울에 남겨두고 휴식을
부여하여 나중의 홈경기를 대비하게 했는데 그러나...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휴식을 얻은 김건우가 여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여자 친구를 직접 차로 바래다
주다가 횡단보도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하여 양 팔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으며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에 잘 나가던 팀 분위기는 급격하게 다운되었고 오영일,
정삼흠, 유종겸, 김용수의 분전과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듯 한 내일이 없는 경기 운영으로 해태와
치열하게 2위 싸움을 벌였지만 에이스 김건우의 공백은 금방 드러나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가을야구 탈락 위기에 몰린 청룡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은 9월 29일, 30일
인천 도원구장에서 하위권의 청보와의 2연전이었다.
일단 29일 오영일, 김용수 등 투수들을 쏟아부으며 총력전을 펼쳤는데 홈팀 청보의 저항은 거셌고
3-3 동점 상태로 연장전 10회 2사 1,2루의 찬스에서 신언호가 양상문의 실투를 받아치며 중견수
김윤환의 키를 넘어가는 중월 2루타가 나왔는데 당연히 1루 주자까지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 스코어는 5-3이 아닌 4-3이었다.
그 이유는 1루 주자 김우근이 질주하다가 3루와 홈 중간에서 쓰러졌는데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엉금엉금 홈으로 기어가다가 청보의 중계 플레이에 횡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게 이닝이 종료된 이후 바로 다음 10회 말 수비 이닝에서 김동기에게 솔로포를
맞으며 패배한 것과 다름없는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다음날에도 9회 말 4-4 2사 1루에서 서효인이 김한조의 평범한 포수 플라이볼을 놓치며 1,3루를
허용하고 김경남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패배했고 더블헤더 2차전에서 정삼흠의 완봉으로
2:0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해태가 롯데를 잡으며 해태와 1.5G 차이로 벌어졌다.
10월 1일 해태가 OB와의 더블헤더를 모두 짐으로써 해태와 승차를 없앨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으나 전날 완투한 정삼흠을 내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 12회에서 이정훈에게
끝내 기안 타를 맞고 1G 차로밖에 좁히지 못했다.
10월 2일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정된 삼성에 홈 마지막 경기에서 1:2 승리를 거두며 마지막 경기
까지 희망고문은 계속되었으나 결국 청룡의 최종전인 10월 3일 사직 롯데전에서 9회 말 정학수
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그날 해태도 빙그레 원정에서 져 만약 이겼다면 해태의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어부지리로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었다.
결국 이쯤 되면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2년 연속 불운에 시달려 가을야구
희망이 날아가고 말았고 롯데가 최종전에서 삼성에게 이기면서 3위 자리도 내주고 반게임차로
4위로 마감했다.
♥ 신인선수
노찬엽(배재고-고려대, 외야수)
정태관(대광고-인천전문대, 외야수)
김영직(휘문고-영남대-상업은행, 외야수)
황윤태(부산고-동아대, 외야수)
윤희정(부산고-성균관대, 내야수)
전년도까지 10명을 뽑을 수 있었던 1차 지명은 전력평준화를 위해 3명으로 크게 줄었다.
OB와 연고지가 겹쳐 다른 구단보다 이른 11월 3일에 먼저 지명을 했다.
고려대의 강타자 노찬엽을 포함하여 외야수 3명으로 1차지명 보강을 마쳤다.
다만 노찬엽은 서울 올림픽 출전으로 1989년에 합류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 종료 이후 11월 3일 김정수가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 시내버스와 충돌하여
사망하는 비보가 있었다. 같이 동승했던 안언학과 김경표 역시 중상을 입었다.
그 당시 김정수 선수는 대형 타자였는데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MBC 청룡에
큰 슬픔과 전력 누스 를 주었습니다
프로 데뷔 후 첫 3할을 기록한 박흥식이 유일한 규정타석 3할 타자였다.
팀타율은. 258로 3위였으나 출루율은. 320으로 꼴찌였으며 OPS도. 662로 7개 구단 중 꼴찌였다.
팀 타격 WAR도 12.78로 팀 순위 꼴찌 청보보다 낮은 꼴찌였다.
철인 김인식이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을 이어갔으나 노쇠화로 인해 타석에서의 영향력이 감소한 것
이 팀 타격 약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팀 내 수위타자인 박흥식은 3루타 부문에서도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김상훈은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에 성공했고, 이광은은 타율을 제외한 거의 전 부문에서
순위권에 들며 미스터 청룡다운 모습을 보였고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김동엽 감독이 재임하던 시기에도 투수 운영을 전면 담당했고 오죽하면 김동엽 감독이 경기 시작
직전 옷을 갈아입으며 선발투수가 누구냐고 기자에게 물었다는 일화가 있었다.
그래서 김동엽 감독 재임 시기에도 실질적인 감독은 미즈타니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김용수를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만들고 타자로 입단한 김건우를 18승 투수로 만들고 일본의
선진야구 시스템을 도입하여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능력에서는 의심이 필요 없었다.
후반기 내내 타점 1위를 지켰으나 시즌 막바지에 무섭게 타점을 쓸어 담으며 추격한 이만수에게.
2타점 차이로 역전당하며 타점왕을 아쉽게 놓쳤다.
정삼흠은 완투 다음날 연장전에 등판하기도 했다.
발 느린 김용달 대신 85년 30 도루를 기록했던 대주자 발 빠른 김우근으로 바뀌었다.
MBC 팬들은 김우근이 김충 3루 코치의 다리에 걸려 넘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경기가 끝난 뒤
퇴근하는 김충 코치의 멱살을 잡으며 화풀이했지만, 나중에 김우근은 "그날 감기에 걸려 감기약을
먹고 출전했다가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다리가 풀리는 바람에 넘어졌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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