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청룡 원년 백인천감독 LG트윈스 초대 감독부임
1989 시즌이 끝나고 정삼흠의 항명사건 등으로 인해 구단 눈밖에 난 배성서 감독을 해임하고,
원년감독이었던 백인천 전 감독이 다시 LG 감독으로 복귀했다.
계약기간은 2년에 연봉 5천만원. 그리고 우용득 타격코치가 다시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갔고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계약이 만료된 유백만 전 감독도 삼성의 수석코치로 가게 되었다.
2군 감독이었던 류영수도 삼성의 투수코치 계약을 맺으며 떠났다.
해태와 롯데 코치직을 맡았던 조창수가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투수코치로는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된 하기룡이 연봉 2,000만원으로 새로 부임했다.
김인식 빼고 모든 코칭스태프가 싹 교체되었다. 김재박은 플레잉코치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선수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김윤겸, 김충, 우용득, 이충순, 한동화, 유영수 대신 김봉기, 김용달,
정순명, 조창수, 최정기, 하기룡이 새로운 코칭스태프가 되었다.
1월 22일 OB 베어스의 최일언과 김상호 간의 트레이드가 있었다.
OB는 우타거포 보강을 꾀했고, LG 측은 지난 시즌 초토화된거나 다름없었던 투수력 강화를 원했다.
이 트레이드는 89년 말부터 추진되었으나 구단 매각문제와 김상호의 미국 이민설 등으로
미루어졌었다. 88년에 데뷔한 김상호는 89년 팀 내 최다 홈런 타자에(12개) 2년 간 홈런 20개에
타점 99점을 기록한 중장거리 타자였으나 실책을 37개나 저지르며 수비가 불안했던 것이
트레이드의 빌미가 되었다. 1월 25일 이재홍이 쌍방울로 현금을 받고 이적했다.
30일에는 오영일이 이적료 2,300만원에 태평양으로 이적했고, 이길환과 김신부 간의
트레이드가 있었다.
2월 5일에는 해태의 차동철과 장호익이 3,000만원, 2,200만원의 현금트레이드로
LG로 이적했다.
♥ MBC청룡 LG 에게 매각
MBC는 구단을 매각하려는 계획아래 대우, 현대, 일화, 한일합섬 등 여러 기업들과 접촉하다가
KBO 쪽에 인수의사를 비친 럭키금성과 협상을 벌이다가 1989년 12월 14일 양쪽의
세부이견조정이 끝나는 대로 럭키금성 측에 구단을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매매가격을 100억원에 합의했으나, 협찬광고료와 대금상환기간[2]에서 이견을 보였다.
다만 세금 문제와 구단을 존속시켜야 한다는 MBC 내의 일부의견으로 인해 12월 15일로 예정된
계약은 연기되었다.
세금 문제가 매각의 최대걸림돌이었는데 청룡은 8년 간 누적된 적자가 130억원에 이르나
적자를 모두 손실비용으로 처리해와 매각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내야해 매각의 실이익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또 MBC 내엔 공기업이 이익으로 공익서비스를 하는게 당연하다며 야구단 운영도
공익서비스라고 계속 구단을 운영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매각계약이 지연되면서 1989년 한해가 다 가도록 비시즌에 해야 할 기존 선수와의 재계약,
선수트레이드, 신인선수 계약, 코칭스태프 계약 등이 모조리 중단되었다.
1990년 1월 6일 투수 하기룡, 최준호, 박달선, 포수 김진우, 내야수 김경표, 조상헌,
외야수 김성수, 황윤태 등 8명의 선수를 자유계약선수로 공시, KBO에 통보했다.
1월 8일 오후에 열린 MBC 재단 이사회에서 매각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1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럭키금성빌딩 강당에서 1달 동안의 교착 상태 끝에
마침내 MBC 청룡에 대한 정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구단의 매각 대금으로 100억원을 1993년까지 4년 동안 분할결제하는 한편 광고비 형식으로
30억원을 별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MBC 청룡 기업 자체는 매각 대금이 완불될 때끼지 존속법인으로 남기기로 했다.
1월 29일 KBO는 실행이사회를 열어 91년부터 잠실구장을 제외한 서울지역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구단의 인수인계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동대문 or 목동구장으로 장소를 옮겨 경기를 치러야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자
럭키금성 측은 이 결정에 대해 당초 계약조건이 MBC 청룡이 갖고있는 의무와 권리가 모두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잠실구장 연고권도 당연히 양도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프로야구발전을
위해 홈구장을 따로 가져야한다면 뒤늦게 서울로 연고를 옮긴 OB에서 당연히 양보해야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럭키금성측은 OB가 수 년 동안 동대문구장 사용권을 얻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아마야구계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이 결정 과정에서 OB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인상이 짙다며 분개했다.
OB는 이에 대해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사실상의 서울연고팀은 우리였다며 당시 MBC
측의 연고지 양도요청을 받아들여 대전으로 갔을 뿐이라고 설명했고 서울지역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KBO의 이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KBO는 이 문제와 관련 2월 7일 구단주 회의를 열어 결정된 이사회안을 그대로 통과시킬 방침을
밝히자 럭키금성측은 법정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월 7일 KBO는 구단주총회를 갖고 MBC 청룡과 럭키금성스포츠 간의 구단매각과 인수를
최종 승인하고, 91년 이후 럭키금성의 목동구장 사용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이웅희 총재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91년부터 전용구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결정은 사실상 철회되었다. 2월 8일 럭키금성 구단주에
구본무 그룹회장이 내정되었다.
구단 회사 이름이 네자여서 표기나 발음이 불편하리라는 여론에 따라 두자로 줄이는 작업과
팀의 애칭을 공모했다. 2월 20일에는 구단 명칭으로 럭키금성의 머리글자를 따 영어 LG가
거론되었고, 팀의 애칭을 여의도 쌍둥이 건물과 이미지가 같은 트윈스가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2월 22일 마침내 야구단 명칭을 LG 트윈스로 확정지었다.
이 명칭은 그룹 임직원들의 공모로 채택된 것. 3월 15일 오전 럭키금성 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이웅희 KBO 총재와 구본무 구단주, LG 트윈스 선수단 및 임직원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단식을 가졌다.
구본무 구단주는 기념사를 통해 투철한 스포츠맨십을 바탕으로 도전적이고도 끈기있고 활기
넘치는 경기를 통해 야구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백인천 감독은 4위권 진입을 창단 첫해 목표로 밝혔다.
1990년 1월 12일부터 진해에 동계훈련을 차렸다. 지난해 태평양 돌핀스의 돌풍으로 극기훈련
열풍이 부는 가운데 이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2월 2일에서 28일까지 대만 전지훈련을 가졌다. 4월 3일 오후 10시 30분 중심타자 이광은이 귀가
중 반대쪽에서 중앙선을 침범한 차를 피하려다 담벽에 들이받아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전치 4주의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있었다.
안그래도 그 전에 연습 중 신언호가 손목 뼈 골절을 입은 상황에서 엎친 데 겹친 격이되었다
♥ 신인선수
1차지명
김동수(서울고 - 한양대 포수)
이병훈(선린상고 - 고려대, 외야수)
거물 포수 김동수는 OB와 MBC의 지명을 동시에 받게 된다.
그러나 MBC는 OB와의 동전 던지기에서 또 승리했다.(...)
1차 1순위에서 김동수를 뽑은 MBC는 1차 4순위에서 외야수 이병훈을 지명하며 쏠쏠한
드래프트 성과를 얻었다.
2차지명:
최우석 (신일고-중앙대,투수)
구동환(충암고-상무, 외야수)
김선진(광주일고-연세대, 내야수)
김성재(대구상고-영남대, 내야수)
박승암(서울고-인하대, 투수)
오정민(신일고-성균관대, 투수)
김명환(동산고-경희대, 투수)
김종철(군산상고, 투수)
김성일(서울고-한양대, 외야수)
박종욱(광주일고-동국대, 외야수)
♥ 1990년 프로야구 LG트윈스
MBC 청룡 시절 1983년 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가을야구를 밟지 못했던 안습의 팀이었고 청룡 시절인 불과 직전 시즌 1.5G차로 간신히 꼴찌를
면한 팀을 럭키금성에서 인수했을 때만 해도 이 팀이 한국시리즈 정상에 도전하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LG 팬들도. 실제로 LG는 시즌 초반 잠시 반짝 선두에 올랐으나 곧바로 하락세를 타며
6월 초에는 OB 베어스와 꼴찌 경쟁을 했었고 일부 팬들은 백인천 사퇴를 바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태 원정 스윕승을 시작으로 8연승을 기록하며 단숨에 하위권을 벗어났고 7월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빙그레 원정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꾸라지며 3위로 처졌고 9월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직행이 유력시되었지만 빙그레가 김영덕 감독 종신감독설로
팀 분위기가 흔들리는 사이 LG는 어부지리로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LG, 해태, 빙그레, 삼성 4팀이 매일 순위가 바뀌는 치열한 순위 경쟁을 하게 되었고
1위를 탈환한 LG는 다시 흔들리며 해태가 맹추격해왔다.
다행히 LG는 정신을 차렸고 LG의 시즌 최종전이었던 OB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한 뒤, 해태가
태평양과의 더블헤더 경기에서 패하면서 LG로 바뀐 후 첫 해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었다.
한국시리즈 상대론 LG의 천적 빙그레, 한국시리즈 100% 우승 해태 대신 LG가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이었던 삼성을 상대하게 되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한 삼성에 대한 전력분석을 완료했고 4승 무패로 MBC 청룡 시절부터
이어져 온 부진을 LG 인수 이후 단번에 털어내는데 성공했다.
LG는 몇몇 유명선수에 기대거나 장타력만을 앞세운 공격야구가 아닌, 선수 전원의 고른 타격,
투수력, 주루, 수비력 등 4박자의 조화를 바탕으로 챔피언에 올랐다.
종전의 정규시즌이나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비결은 강력한 특급투수 한 명의 활약이나 몇몇
타자들의 장타력으로 설명되어왔다.
82년 OB는 박철순이라는 특급 에이스가 있었고 83년 해태는 투수 이상윤과 김봉연 등 홈런타자,
84년 롯데는 최동원이라는 특급투수, 85년 삼성은 김일융, 김시진 원투펀치와 이만수 등의
장타력이 바탕이 되어 우승했다.
86-89년 해태의 4연패는 선동열이라는 국보급 투수와 김성한, 한대화 등 강타자들의 활약이 컸다.
하지만 LG는 지금까지의 공식과는 다르게 선수 전원의 단타 위주 야구로 우승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이렇다할 기둥투수가 부족했으나 김태원과 문병권, 정삼흠을 발굴해냈고
그러면서 한 투수에만 의존하지 않는 투수 운용이 가능해졌다.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던지고 잘 잡는 야구는 정규시즌이라는 장기전 뿐 아니라 한국시리즈라는
단기전에서까지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이런 야구가 이루어지는데 백인천 감독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한몫했으나 럭키금성 그룹의
전폭적인 후원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우선 구단은 인수와 함께 MBC 청룡의 기존 선수들의 의사를 수렴하여 야인으로 머물던
백인천 감독을 영입했고 코치진과 선수 관리의 전권을 백 감독에게 일임하여 다른 구단들의
단골 골칫거리였던 프런트와의 갈등을 차단했다.
LG가 흔들릴 때도 구본무 구단주가 직접 나서 '10연패도 괜찮다.', '60만명 관중 동원이 안되면
그룹직원이라도 동원하겠다.' 등으로 구단을 보호, 선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했다.
선수들의 연봉도 최고 100% 인상, 최소 동결로 파격적인 지원과 함께 LG 선수들의
사기를 높였다.
이에 호응하여 백 감독의 지론인 프로정신이 넘치는 '혼의 야구'가 마음껏 펼쳐졌는데
끊어치는 타법 등 일본 프로무대에서 익힌 타격 방법으로 선수들의 타격을 끌어올렸고
마무리 투수였던 김용수와 선발투수 정삼흠을 절묘하게 임무를 교대하는 탁월한 용병술을
발휘했다. 한겨례 총평 매일경제 총평 MBC 청룡 시절이던 1983년 이후 7년 만에 진출한
한국시리즈에서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른 삼성 라이온즈를 4전 전승으로 꺾고 MBC 청룡에서
LG 트윈스로 바뀐 첫 해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서울 연고팀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기도 했다. MVP는 김용수.
♥ 1990년 프로야구 코리안시리즈
★ 1차전
삼성은 선발로 성준을 내세웠고, LG는 선발로 김용수를 내세웠다. 경기는 초반에 갈렸다.
1회 안타 5개를 집중시켜 2득점하면서 삼성은 일찍부터 성준을 강판시키고, 최동원을
구원투수로내세웠으나, 3회에 다시 집중타를 몰아치면서 5점을 뽑아 승부를 완벽하게
갈라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여유있게 LG의 페이스. LG는 승부가 기울자, 주전들을 모두 빼고, 민경삼과
김동재, 유지홍 같은 벤치멤버들을 내세우고도 삼성 마운드를 폭격, 꾸준히 점수를 내면서
무려 21안타를 삼성을 상대로 쏟아부어 13점을 얻어내며 삼성의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김상훈이 3안타 3타점, 이광은이 3안타 2타점, 박흥식과 김재박, 김동수도 2안타를 뽑아
내면서 그야말로 삼성 마운드를 맹폭하며 가볍게 승리했다.
마운드에서는 김용수가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고, 뒤이어 경기 감각 조율차 8회부터
마무리 정삼흠을 올려 가볍게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여유있게 승리를 결정지었다.
이 경기는 LG 트윈스 팀 최초의 포스트시즌 승리였다.
★ 2차전
삼성은 선발로 부시맨 김성길을 내세웠고, LG는 선발로 김태원을 올렸다.
경기는 1차전과 달리 삼성이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으며 팽팡한 접전 양상으로 이어졌다.
1회초 삼성은 1사 이후 이현택의 볼넷에 이어 박승호가 우익선상을 따라가는 1타점 2루타
날리며 먼저 선취점을 올렸다.
하지만 1회초 이어진 1사 2루 찬스를 놓쳤다. 그리고 2회초 1사 1,2루 찬스에서 더블 스틸을
시도하다가 3루에서 아웃되었고, 이어진 2사 1,2루 찬스도 류중일의 안타 때, 2루 주자
장태수가 우익수 김영직의 홈송구에 홈에서 아웃되면서 달아날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리고 LG는 곧바로 3회말 공격에서 선두타자 김상훈과 박흥식이 나가며 무사 1,2루를
만들었지만, 노찬엽이 병살타를 치면서 기회를 날리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타자 김동수가
2사 3루 상황에서 중전안타를 쳐내며, 바로 동점을 만들었다.
삼성은 6회초 박승호가 솔로 홈런을 치면서 다시 앞서 나갔고, 계투진을 동원해서 1점을
지키려 했다.
특히 6회말 2사 만루의 위기를 넘기면서 완벽히 삼성의 페이스로 가져오는 듯 했다.
그러나 삼성은 더이상의 추가점을 뽑지 못했고 9회말 LG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선두타자인 박흥식이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긴 빚맞은 안타로 포문을 열었고 윤덕규의
좌전안타로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여기서 김상훈이 6-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치면서 경기는 삼성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3회말과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났다. 2사 3루에서 '영감' 김영직이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극적인 동점 적시타를 치면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연장 11회말 공격에서 이병훈이 이태일의 4구를 잡아당겨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로 포문을 연 다음, 윤덕규의 중전안타와 김상훈의 고의사구로 1사 만루를 만들고,
여기서 김영직이 바뀐 투수 정윤수를 상대로 2-3 풀카운트에서 볼을 골라내 끝내기
밀어내기를 기록하며 2차전도 승리를 가져 갔다.
백인천 감독은 삼성 선발 김성길을 공략하고자 평소에 우투수 저격용 대타로 출장하던
김영직을 우익수 겸 4번타자로 선발출장시키는 승부수를 띄웠는데, 김영직은 공격에서는
혼자 2타점을 올렸고, 우려했던 수비에서도 2회 2사 1,2루 위기에서 빨랫줄 송구로 발빠른
2루주자 장태수를 잡아내면서 백인천 감독과 팬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다.
★ 3차전
홈으로 돌아온 삼성은 1차전 선발 성준을 다시 기용했고, LG는 좌완 김기범을 내세웠다.
승부는 2회초에 갈리는데 2회초 공격에서 LG는 4번 노찬엽과 5번 김동수가 각각 안타와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6번타자 이광은이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가면서 무사 만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병훈이 빗맞은 땅볼 타구를 날렸는데 전진수비를 하던 3루수의 키를 넘겨버리면서
외야까지 굴러가버렸다.
2타점 적시타. LG가 먼저 앞서 나갔다. 그리고 이어진 찬스에서 김영직의 희생플라이로
추가점을 내면서 3:0으로 앞서 나갔다.
그 뒤로는 줄곧 투수전의 연속이었다. LG는 2회부터 구원등판한 삼성의 이태일의
투구에 말리면서 그 뒤로 이렇다할 찬스를 잡지 못했다.
삼성도 LG 선발 김기범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여 7회 투아웃까지 안타 2개로 완전히 눌렸다.
삼성은 그나마 9회말 2아웃에서 이만수가 2점 홈런을 쳐 한가닥 희망을 살리려 애썼지만,
너무 늦은 추격이었다.
곧바로 다음 타자 강기웅이 정삼흠에게 우익수 플라이로 아웃되었고, 결국 3차전도
LG의 승리로 끝났다
★ 4차전
LG는 1차전 승리의 주역인 김용수를, 삼성은 김상엽을 선발로 내세웠다.
먼저 기회를 잡은 것은 삼성이었다.
2회말 무사 1,2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여기서 이만수의 잘맞은 타구를 LG의 좌익수 윤덕규가
호수비로 잡아내 2루 주자까지 아웃시키면서 순식간에 삼성의 찬스가 날라갔다.
반대로 LG는 3회초 공격에서 김재박의 볼넷을 시작으로 연속 2안타로 1점을 먼저 낸 후,
3번 김상훈의 투수 앞 땅볼을 김상엽이 잘 잡고도 어디로 던질지 머뭇거리다가 주자와 타자를
모두 살려주는 보이지 않는 실책을 저지른 것을 틈 타, 노찬엽의 희생플라이와 김동수,
이광은의 연속 안타로 추가 3점을 내면서 승부를 갈랐다.
그리고 5회초에 김영직의 안타와 김상훈의 3루타로 다시 점수를 내면서 점수를 6:0으로 벌리면서
우승을 사실상 예약했다.
삼성은 6회말 두 점을 추격했지만, 경기를 뒤집을 힘은 없었고, 결국 경기는 6:2 LG의 승리로
끝나면서 LG는 전신인 MBC 청룡을 포함해서 사상 첫 우승의 감격을 맛 봤다.
시리즈 2승을 챙긴 김용수는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반대로 삼성은 1986년부터 이어진 한국시리즈 연패를 11로 늘리면서 한국시리즈에서
약한 징크스를 그대로 가져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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