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프로야구 스토브리그
12월 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2군 투수코치였던 마틴 패튼 코치와 연봉 12만 달러에 1년
코치 계약을 맺었다. 다만 백인천 감독과 상의가 없어서 사표 제출의 원인을 제공했다.
은퇴한 양승관과 유종겸이 신임 코치가 되었다.
베테랑 백업포수 심재원은 플레잉코치를 맡게 되었다.
최일언, 예병준, 박성훈, 김신부 등을 방출했다.
유지홍, 양승관, 신언호, 유종겸은 은퇴했다. 양승관과 유종겸은 코치가 되었다.
최일언은 삼성에 입단했다.
1월 9일 태평양에서 방출된 '대도' 김일권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 신인선수
신인 선수 1차 지명
송구홍(선린상고-건국대, 내야수)
1차 지명으로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 건국대의 송구홍을 지명했고 계약금 4천만 원에
입단 계약했다.
2차 지명
이석구(서울고-건국대, 투수)
강진규(마산고-연세대, 포수)
나진균(영남대, 외야수)
김기덕(한양대, 투수)
소순배(장충고-동국대, 내야수)
안종호(신일고--성균관대-상무, 투수) 2차 지명에서 건진 선수는 사실상 없다.
그나마 고졸 연고 자유 계약으로 입단한 이종열이 2009년까지 활약했다.
그 외에에 이우수, 이병석을 영입했고 시즌 중 재미교포인 윤찬을 영입했다.
11월 27일 백인천 감독은 김종정 구단 사장과 신라호텔에서 만나 재계약을 요청했다.
12월 1일, MBC 청룡 시절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즈와 교류협정을 맺었다.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8일 동안 김용수를 비롯한 선수, 프런트 16명을 대상으로 백암온천에서
체력 강화 훈련을 실시했다.
12월 11일 백인천 감독이 구단에 사표를 제출했다.
정순명 코치 등 코칭스태프의 대우 문제 요구 묵살과 패튼 코치 영입 건에서 감독과의 아무런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한 것이 이유였다.
구단 측은 백 감독이 구단에 직접적으로 의견 제시를 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불만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일단 본뜻의 파악에 애쓰고 있으나 결코 백 감독과 코치진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행히 12월 19일 백 감독은 김종정 사장과 만나 원년멤버 출신 코치들의 재계약 건 등
사퇴 표명의 원인이 되었던 오해들을 풀고 사표를 철회했다. 2월 27일 납회식이 있었다.
1월 23일, 걸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30일부터 실시할 예정이었던 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계획을 보류했다. 그리고 1월 31일 그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2월 1일부터
진해공설운동장에서 1,2군 합동 전지훈련을 가지는 것으로 변경했다.
♥ 1991년 프로야구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게 몰락해버린 시즌이다.
시즌 시작 전부터 해태의 김응용 감독이 LG의 순위를 정확히 6위로 예측했다.
지난해 백인천 감독이 히트앤드런 작전을 구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 재미를 봤으나
이번해에는 각 구단이 이에 철저히 대비하여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것이었다.
전 OB 감독이자 다음 해 LG 감독이 될 이광환 감독은 LG 야구를 3가지 특징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무사에 주자가 1루에 나가기만 하면 영락없이 히트앤드런, 도루, 보내기 번트 등
작전을 건다는 것.
보내기 번트 자세를 취했다가 볼카운트가 유리해지면 강공으로 밀어붙이고 안되면 다시
보내기 번트를 시도하여 상대 수비를 교란시킨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무사 OR 1사에서 볼카운트가 2~3까지 가면 무조건 런앤드히트 작전을 구사하고
세 번째는 라인업에 신인을 넣었다가 찬스가 오면 주전을 투입, 선수들의 경쟁심리를 통해
효과적으로 득점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이에 LG의 작전에 철저히 대비하는 삼성(6패)과 빙그레(2승 1 무 5패), 해태(2승 5패),
롯데(3승 6패) 등이 LG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LG의 부진 원인은 각 구단의 견제가 심해진 탓도 있지만 LG 특유의 작전을 수행할
선수들의 배팅 감각이 전만 못하기 때문으로도 분석되었다.
백인천 특유의 끊어뜨리는 배팅 폼이 흐트러지며 방망이가 숨을 죽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김기범, 정삼흠, 김용수 등 대부분의 투수들이 혹사로 구위가 떨어져 상대 방망이를
막아내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있었다.
1990년의 우승이 여러 가지 호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이루어졌고 시즌 전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었기 때문에 하위권으로 떨어지리라는 근거였는데 이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시즌 시작 전부터 백인천 감독의 재계약 건을 둘러싸고 잡음이 있었으며 어찌어찌 함께 가기는
했으나 지난해만큼의 팀 응집력이 나타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혼의 야구'를 표방했던 백인천은 아직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은 상태에서 계약갱신을
요구하며 구단과 마찰을 빚었고 그 와중에 겉도는 선수들이 나타났으며 이에 환멸을 느낀
백인천이 시즌 도중 재계약 포기를 공언하면서 팀 분위기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결국 LG는 전반기에 4위에 간신히 턱걸이했으나 결국 후반기 연패를 밥 먹듯 하고 와르르
무너지며 신생팀 쌍방울과 동률 6위로 시즌을 마치고 말았다.
그나마도 LG가 시즌을 먼저 마친 뒤 쌍방울이 마지막 4경기를 모두 패해서 공동 6위였다.
지난해와 거의 똑같은 선수층을 갖고도 상전벽해 현상이 나타난 것은 구원전문으로 일가견을
가졌던 정삼흠이 5월 초 3 연속 구원 실패로 마무리 투수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선발과 구원을
왔다 갔다 하며 마구잡이로 등판하던 김용수마저 방전되어, 전반적으로 투수력이 버텨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90년 18승을 올렸던 김태원은 10승이나 줄어든 8승에 그쳤고 언더핸드 문병권도 10승에서
3승으로 급전직하했다.
전년도에 타선의 중심에 섰던 김동수가 타율 2할도 못 치는 2년생 징크스에 빠지고 김상훈도
부진을 거듭, 김재박과 이광은은 노쇠화를 드러냈고 시즌 내내 꾸준하게 잘 쳐준 타자는 3할을
넘긴 윤덕규와 노찬엽이 유이했다.
8 구단 체제로 휴식일이 사라진 것도 특정 투수에 의존하는 운영과 노쇠화된 타선 모두에
큰 악재였다.
백 감독의 재계약 포기 선언을 서슴없이 받아들인 LG 구단은 정규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1군 위주에 2 군선수를 얹어 미국 교육리그에 단일팀을 파견하는 등 구각을 깨고 새로운 팀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광환 전 OB 감독을 사령탑으로 받아들이고 김재박, 이광은 등 노장 선수들을 은퇴시킨 것은
이런 수순을 따른 것이었다.
이광은은 코치로 돌아섰으나 김재박은 LG의 코치 계약 제의를 거부, 선수로 뛰겠다는 의사를
밝혀 태평양 돌핀스에 사상 최초로 무상 트레이드됐다.
프로야구는 감독과 코치 선수들이 하는 협동체인데 MBC에서 관료 생각으로 하는 프런트와 같이
LG 트윈스에서도 감독에게 전권을 주지 않고 일일이 간섭을 하며 감독의 위치를 흔들면 어떤 감독
도 그 구단에서 감독생활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후 1994년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로 다시 한번
우승을 하지만 2001년 10대 감독인 김성근 감독이 시즌 4위에서 코리안시리즈까지 가서 준우승을
하였으나 다음 해에 감독직을 사퇴시킨이후 LG 트윈스는 긴 시간 동안 하위권에 머물게 됩니다
LG 트윈스는 프런트에 많은 문제를 않고 있는 구단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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