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스토브리그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다가 삼성과 결별한 천보성이 코치로 부임했다.
김봉기, 정순병, 양승관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투수코치였던 마틴 패튼의 계약이 만료되었다.
1993년 4월 6일 MBC 청룡 투수 출신인 오영일을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코칭스태프 인원이 14명에서 12명으로 축소되었다.
1992년 12월 5일 이국성과 빙그레 조양근 간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나진균은 1992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12월 23일 자유계약 공시로 트레이드 대상이었던 8명을 방출했다.
(이용철김덕근, 문동식, 유동우, 강진규, 김성일, 오인, 최용호) 1993년 1월 27일 해태의 투수 오희주를
현금을 주고 데려왔다. 그 외에 서왕권이 자진 은퇴했다.
♥ 신인선수
♥ 프로야구 1993년 시즌
좌완 파이어볼러 고려대 이상훈을 OB 베어스와의 주사위 대결에서 이겨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총 몸값은 계약금 1억 8800만+연봉 1,200만원으로 2억원었고, 당시 신인 최고 몸값으로 신인 2억원
시대를 열었다.
억대팔 이상훈의 가세와 노송 김용수의 부상 복귀로 전력 상승이 기대되었고 시즌 중반까지는 해태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치며 프로야구의 흥행을 주도했다.
해태와의 잠실 시리즈는 연일 만원관중을 이루었고 7월 스윕을 달성했던 삼성과의 잠실 시리즈에는
평일임에도 3경기 모두 매진을 이루는 위업을 이룬다.
8월 중엽까지는 선두 해태를 1경기차로 추격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 뜨거웠던 박준태의 타격감이 서서히 식어갔고 전반기 맹타에 타점왕 경쟁을 했던
김상훈도 후반기 들어 부진하면서 공격력이 약화되었다.
다승 1위를 달리던 정삼흠도 8월 이후에는 승수를 쌓는데 힘겨운 모습을 보이며 조계현에게 다승왕
타이틀을 내줬다.
김기범, 이상훈, 김태원은 준수한 방어율에도 불운이 겹치며 10승에 실패했다.
결국 8월 중순 이후 LG는 급추락하며 9월 초 대구 삼성 원정을 기점으로 3위로 내려갔고
준플레이오프를 무산시킬수도 있었던 위치였음에도 4위 OB에게 시즌 막판 따라잡혀 3위 자리마저
최종전에서 빼앗기고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쳤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주루사와 실책 등으로 자멸한 OB에 2승1패를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삼성을 상대로 윤찬의 주루사로 2차전까지 모두 패한게 치명타로 작용하며 대구에서 열린 3,4차전을
모두 잡았음에도 정작 홈에서 열린 5차전에서 1점차로 분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 주전 1루수 김상훈과 외야수 이병훈이 한대화와 신동수, 허문회를 상대로 해태로
트레이드되었고 2년 연속 3할을 친 송구홍의 군 입대 소식과 주전 포수 김동수의 방위병 복무로 인해
암울하게 1994시즌을 맞이하는 줄 알았으나...
♥ 프로야구 1993년 시즌 개인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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