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MBC 청룡 후기리그 우승
1년의 늦은 영입을 감수하고 뽑았던 김재박과 이해창, 두 국가대표 내외야의 핵심이 비로소
입단했기 때문에 전력이 한층 배가되어야 했지만 뜻밖에 치명적인 전력 누수를 초기부터
겪어야 했다.
백인천이 구단과의 불화와 함께 복잡한 가정사를 이유로 시즌 초반에 장기휴가를 명목
하에 사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감독 자리와 4번타자가 한꺼번에 공석이 되었다.
팀의 중심타자이자, 대체 불가능한 리더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던 백인천의 영향력은 상당한
편이었다. 선장을 잃은 청룡호는 출항부터 졸지에 선장을 잃은 난파선이 되었고 유백만과
한동화 대행 체제에서 전기리그 우승권과 멀어진 채 OB, 롯데, 삼성과 함께 하위권에서 맴돌다
3위(25승 24패 1무)로 마감해야 했다.
김동엽 감독이 전기리그 막판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근과 채찍을 교묘히 쓰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사기를 재충전시켰고, 선수 개개인의
책임감을 강조하며 동기부여를 만드는 등, 백인천의 이탈 이후 뒤숭숭해진 팀을 본 궤도로 다시
이끌어나갔다.
원래 선수구성만큼은 시즌 전부터 감히 우승 후보로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표류했던 팀이
공통적인 목표의식이 생기고 사기까지 충만해지니 막을 수 있는 팀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30승 괴물 투수 너구리 장명부가 버티는 삼미조차 5 게임차로 무릎 꿇리며 후기리그
우승 트로피(및 전-후기 통합승률 1위)를 거머쥐는 데 성공한다.
후기리그 우승의 원동력은 고른활약을 펼친 5명의 선발진 하기룡-이길환-오영일-유종겸-이광권과
뛰는 야구 "청룡육상부"에 있었다.
83년 청룡 타선은 두자릿수 홈런타자, 3할 타자가 전무한 식물 타선이었는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발이었다.
루상에 나가기만 하면 2루, 3루로 과감히 내달렸고, 상대 수비가 빈틈을 보이면 단타나 장타 때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것은 물론이고 내야땅볼때 2루에서 홈까지 과감히 돌진하는 무리수스러운
플레이도 종종 감행했다.
그 결과 시즌이 종료된 후 도루 부문 10걸에는 청룡 소속의 선수가 김재박, 이해창, 이광은, 이종도,
김인식으로 5명(도합 팀 도루수는 128개로 해태에 이은 2위)이나 배출돼있는 진기한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가공할만한 "발의 위력" 덕분에 청룡은 부족한 장타력과 정교함을 주력으로 대체하며 득점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후기리그 우승과 종합승률 1위라는 결실로까지 이어낼 수 있었다.
♥ 1983넌 전, 후기 시리즈 순위
♥ 신인선수
♥ 1983넌 한국시리즈
MBC 청룡의 처음이자 마지막 포스트시즌이었다.
마운드의 청룡과 불방망이의 해태, 김동엽 감독의 복수혈전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보너스 문제로
인한 선수들의 의욕 상실과 경기를 이길 생각이 없는 김동엽 감독의 최악의 경기 운영,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인해 연기된 상황에서 MBC 구단 수뇌부의 어이없는 태도까지
겹치며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졸전으로 역사에 남겨지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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