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 전 LG 트윈스 김용수 투수의 코리안시리즈 모습을 고우석 선수로 보고 싶습니다
2022년에는 28년전 지금의 LG트윈스 감독을 맡고 있는 신인 3인방 을 내세워 코리안시리즈
에서 우승을 했던 1994년처럼 세 번째 우승을 할 수 있을까요?
2021년까지 3번째 가을 야구에 진출했지만 투수력은 안 정스러운데 타력이 너무 약해서
매번 준플레이 에도 올라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투수력과 막강한 파괴력으로 세 번째 우승을
기대해 볼만한 2022년입니다
저는 1994년 LG 트윈스 기억이 그 당시 신인이었던 서용빈 타자가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에
감독이 대타 작전을 사용하려고 하자 강력한 자신감을 표현하며 대타를 거부하고 기어코 안타
를 만들어 점수를 내던 상황과 코리안 시리즈 4차전에 9회 말 마지막 타자를 투수 땅볼로 잡아
만세를 부르며 1루로 송구 하여 우승을 자축했던 LG의 영원한 마무리 투수 김용수 선수 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 합니다 2022년 에는 고우석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길 기원합니다
LG 트윈스 1994년 시리즈 시작
이종도 수석코치와 최정기 배터리 코치, 하기룡 2군 투수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했다.
1군에 유종겸 투수코치와 천보성 수비코치는 유임되었다. 그리고 2군 타격코치였던 김용달은
1군 타격코치, 2군 작전코치 최정우는 1군 작전코치,
오영일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대신, 2군에는 타격코치로 이광은, 작전코치로 김인식,
수비코치에는 신언호가 임명되었다.
추가 코치 영입으로 2군 타격코치로 박종훈, 2군 투수코치에 임호균을 영입했다.
심재원이 신임 1군 배터리 코치가 되었다. 삼성의 전 2군 감독이었던 박용진을 2군 감독으로,
빙그레의 투수코치였던 김명성을 1군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1993년 12월 1일 해태와의 초유의 4: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김상훈과 이병훈을 내주는 조건으로 한대화, 신동수, 허문회, 김봉재를 영입한 것이다.
노쇠화가 시작된 것 같은 한대화를 받는 대신 '미스터 청룡'이라는 별명의 프랜차이즈 1루수
김상훈을 내주는 이 결정에 최종준 단장은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다.
송구홍과 김동수가 군입대를 했다. 송구홍은 현역 판정, 김동수는 방위병 판정을 받아
김동수는 위수지역인 홈경기와 OB 원정경기는 출장할 수 있게 되었다.
LG 트윈스 최고의 신인 3인방
4라운드 최동수 포수 광영고 - 중앙대
5라운드 박창현 투수 동산고 - 경남대
6라운드 서용빈 내야수 선린상고 - 단국대
고졸 연고 김재현 외야수 신일고
신윤호 투수 충암고
대졸 신인 1차 지명으로 OB가 동국대 좌완투수 류택현을 지명한 반면
LG는 한양대의 거물 유격수 유지현을 지명했다.
계약금은 7,500만 원에 연봉은 1,200만 원이었다.
2차 지명에서 단국대 투수 인현배를 1라운드로 뽑았다.
3라운드에는 고려대 투수 박철홍을 지명했다.
4라운드로는 중앙대 포수 최동수를, 마지막 픽인
6라운드에서는 단국대 내야수 서용빈을 지명했다.
고졸 신인으로 신일고의 김재현을 고졸 최고대우인 계약금 9,100만 원, 연봉 1,200만 원에 계약했다.
또한 충암고의 신윤호를 계약금 8,800만 원, 연봉 1,200만 원에 계약했다.
이로써 프로야구의 억대 고졸 신인 시대를 열었다.
LG 트윈스 1994년
전구단 상대 우세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3연전 스윕패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팽팽하게 맞선 상대는 의외로 6위였던 롯데 자이언츠였으나 8승 8패에서 마지막 2경기를
승리하며 우세가 되었다. 2위 태평양을 상대로 5월 초 잠실 3연전에서 스윕승을 한 것이
LG가 독주체제를 갖추게 한 결정적인 시리즈가 됐으며 시즌 전적 13승 5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해태전은 11승 7패로 우세했으나 LG의 천적 조계현이 선발 등판한 경기 6경기는
모두 졌다. 조계현이 나오지 않은 날 해태전 전적은 11승 1패로 압도적이었다
이 팀이 앞으로 27년이나 우승을 못 할 것이라고 말하면 대놓고 헛소리 취급을 들을 정도로,
LG 트윈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임는 물론이고 KBO 역사상 최고의 시즌 중 하나였다.
4월 26일 청주 한화전에서 1위로 올라선 이후 시즌 종료까지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멀찌감치 독주했다. 655 득점으로 이해 득점 2위였던 해태보다 102 득점이 많았으며, 452점의
실점으로 최소 실점 2위였던 태평양보다 19점이 적었다.
팀타율. 282, 팀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하며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기록했다.
LG는 당시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인 81승 45패(승률. 643)를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직행,
태평양 돌핀스를 4전 전승으로 완파하며 1990년 이후 창단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팀의 투, 타지 표를 보면 이 해 LG가 압도적으로 강한 팀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우선적으로 팀 WRC+는 120을 넘겼고, KBO 리그 역사상 4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투수진 역시 빈틈이 없었다. 승률 자체도. 643인데, 피타고리안 승률은 무려. 690으로 KBO
역사상 최강 팀인 00현 대급이다.
이 정도로 타 팀을 압살 하면서 우승했으니 다음 우승할 때 마실 술을 만들어둔 것이다.
'신인 3인방' 돌풍을 일으켰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과 '해결사' 한대화, 노찬엽, 박준태, 박종호,
김영직, 최훈재 등이 있었던 위력적인 타선, 이상훈, 김태원, 정삼흠, 인현배, 김기범이 버티고 있었던
탄탄한 선발진과 차동철, 박철홍, 민원기, 차명석, 강봉수, 김용수가 버텼던 마운드는 LG를 94년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LG 트윈스의 야구를 신바람 야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선발투수 중 3명이 15승 이상을 거둔 첫 번째 구단이 되었고, 5명의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1994년 LG 마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투수들의 역할 분배였다.
현재는 이것이 매우 상식적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운영이었다.
이기는 상황에서 등판하는 투수, 동점이나 근소한 점수 차이로 지고 있을 때 등판하는 투수,
크게 이기고 있거나 이길 가능성이 낮을 때 등판하는 투수로 불펜의 역할을 분배했다.
부임 3년 차가 된 이광환 감독은 선수들의 능력과 경기 상황에 따라 투수들의 역할을 분배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해태 타이거즈가 투타에서 강력한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프로야구판에 서울 연고 구단이 투타에서 압도적인 포스를 발휘하며 인구 1,000만의 서울 연고 팬들을
신바람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트윈스의 1994 시즌은 현재까지도 트윈스 팬들의 뇌리 속에서
깊게 박혀있다.
긴 암흑기를 겪었음에도 강력한 LG 트윈스의 팬덤은 바로 이 시기에 야구에 입문한
사람들로부터 많이 이루어졌다.
♥ 수상 및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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