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스토브리그
LG의 백업 포수로 활동했던 서효인은 은퇴한 뒤 2군 배터리 코치가 됐다.
임호균 투수코치는 재계약에 이견을 보이며 삼성 라이온즈로 떠났고, 신언호 외야 수비코치
는 김재박 현대 유니콘스 감독의 수석코치 직 제의를 받아들여 현대로 이적한다.
1995년 10월 30일 전일수와 노종우, 김성기, 김익철, 이성준이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김영직은 현역에서 은퇴했다.
11월 1일 캐나다 교포 내야수 이승준과 계약금 6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1995년 12월 최종준 운영부 수석부장이 96 그룹 정기인사에서 이사대우로 승진해 LG의
신임 단장이 되었다.
송구홍은 3월, 차명석과 민원기, 류지현, 김정민은 4월, 박종호는 6월에 방위병에서 제대했다.
♥ 1996년 신인선수
1차 지명으로 연세대의 투수 이정길을 지명했다. 그러나 프로야구 최고액인 4억 원의 계약금이
무색하게 단 5 경기만 나오고 은퇴해 프로야구 최악의 먹튀가 됐다.
고졸 우선 지명으로 선린상고 투수 경헌호, 배재고 포수 최승환, 충암고 투수 이경원을 지명했다.
그러나 경헌호와 최승환은 대학 진학을 선택하였다.
2차 지명으로 1 픽 공주고 투수 손혁을 제외하면 모두 망했다
♥ 시즌 전 전망
정상 탈환을 노리는 LG 트윈스는 투수력과 공격력에서 상반된 전력을 보이고 있다.
공격력은 상. 하위타순 가릴 것 없이 활화산처럼 폭발적인 화력을 자랑하지만 마운드는 에이스
이상훈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노쇠화로 불안감을 노출하고 있다.
이광환 감독은 믿을만한 투수를 쉽게 꼽을 수 없는 형편이지만 우선 선발투수로 이상훈과
김기범, 김태원, 정삼흠 등으로 구성했고 중간계투 요원에는 지난해와 비슷한 차명석,
민원기, 박철홍, 신동수, 차동철 등으로, 마무리에는 김용수를 포진시켰다.
그러나 국내 최고 투수로 평가되는 이상훈을 제외하면 불안한 모습이다.
김용수와 정삼흠, 김태원은 30 중반으로 치닫는 나이로 체력 저하가 우려되고 최고참인
전문 마무리 김용수는 중간계투 요원의 약화로 조기 등판할 가능성이 높아 지난해와 같은
성적을 거둘지 의문시되고 있다.
이 같은 LG 마운드의 침체는 신인 스카우트의 실패가 한 요인을 이루고 있다.
LG 프런트는 지난겨울 마운드의 사정을 헤아리고 투수력 보강에 주력했으나 거물 투수
임선동을
놓친 데다 기대를 걸었던 이정길, 손혁, 이경원 등 신인들의 기량이 모두 수준 미달로 드러나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겨울 신인 계약금 폭등의 기폭제가 됐던 이정길은 4억원의 몸값을받았으나
전지훈련에서 이탈, 2군에 머물고 있다.
LG로선 90년 팀 창단 뒤 최악의 스카우트로 마운드 보강에 실패한 셈. 다만 3년생인
김도완과 신윤호가 지난 겨울 부쩍 성장세를 보여 마운드에 다소나마 수혈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반면 LG의 자랑인 공격력은 올해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지난해 부진했던 한대화가 되살아나고 있고 서용빈과 김재현, 심재학, 조현 등은 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견 노찬엽과 최훈재의 방망이도 상쾌하게 돌아가고 있다.
상. 하위타선 구분 없이 소총과 대포가 고루 포진, 상대 마운드를 압도해 LG는 올 시즌 지키는
야구보다는 방망이를 앞세운 화끈한 공격야구로 페넌트레이스를 펼칠 전망이다.
수비력은 내. 외야 할 것 없이 8개 구단 어디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
내야는 방위 복무에서 풀리는 유지현을 축으로 서용빈, 이우수, 송구홍, 이종열 등이 버티고
외야는 김재현, 심재학, 조현, 노찬엽, 최훈재 등이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며 자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또 야전 사령 관격인 안방에는 간판 포수 김동수와 수비력이 뛰어난 김정민이 뒤를 받쳐
코칭스태프의 근심을 덜고 있다.
지난해 페넌트레이스에서 8월까지 선두를 달리다 막판 OB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뒤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게 패했던 LG는 올 시즌 목표를 당연히 정상 탈환으로 잡았다.
기록을 보니 LG 트윈스는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을에 가면 힘이 빠지는 그런 야구를 했고
LG 프런트는
올해 이정용, 이재원의 상무 입대까지 미루어 놓고 제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두 사람의
앞날을 LG가
천만에 만만에 콩떡! 모르는척하고 토사구팽을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월드컵 16강을 이루고 돌아온 벤투 감독이 월드컵 하기 전에 미리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처럼
다르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잘되면 지들탓 안되면 선수 감독 탓 이래 가지고 월드컵 8강이나 LG 트윈스의 우승!?
과연 가능할까요? 선수 뒤에 있는 사람들이 선수를 챙기지 않는다면 그 선수가 과연 최상의
컨디션으로 관객들이 원하는 그런 경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1996년 시리즈 LG 트윈스 총평
총체적 난국이었던 해였다.
전전 시즌 압도적인 통합우승과 불과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에 근접했던 것이 무색하게 7위로
추락했다.
이 시즌의 충격적인 추락으로 인해 LG는 2022년이 돼서야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웠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이 해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면 LG는 6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것이니 더욱 안타까웠던 시즌이라 할 수 있었다.
시즌 전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았고 4월에 1993년 이후 처음으로 월간 승률 4할대를
기록했을 때에도 유지현 등이 방위병 복무를 마치면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5월 1일 에이스 이상훈이 경기 중 척추 분리증 증세를 보이며 선발에서 이탈하면서
전력에 큰 공백이 발생했고 유지현의 부진과 박종호의 시즌 아웃으로 방위병 제대도 반등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LG는 투타에서 엇박자를 노출하고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결국 이광환 감독은 전반기를 마친 뒤 올스타 브레이크 도중 경질되고 천보성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후반기 순위 경쟁에서 멀어지자 디펜딩 챔피언이자 지난해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쳤던
OB 베어스와 함께 신인 지명권 2장을 얻기 위해 경기에 2 진급을 대거 출전시키는 등 일부러
꼴찌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하위권 추락의 원인은 투타의 부진이었다.
먼저 투수진을 살펴보면 이상훈이 선발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정삼흠과 김태원이 8~9승에
규정이닝을 소화하며 버텼지만 1994년의 에이스급 성적은 아니었다.
김기범이 13승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여 구멍이 크게 발생했다.
지난해 스윙맨으로 쏠쏠한 모습을 보였던 박철홍은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유독 그가
나오는 날에는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불펜진에서도 차동철이 부진에 빠졌고 김용수도 초반 지난 3년에 비하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상훈이 마무리 투수로 나서게 되며 김용수는 중간계투를 거쳐 후반기에는 4년 만에 선발투수로
복귀해 치열한 리그 다승왕 레이스에 합류했다.
그렇게 되면서 한때 LG의 1~4 선발이 모두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는 만 30세 이상으로 채워지는
일이 발생했다.
여기서 김기범과 김태원은 1996 시즌이 풀타임 선발로서의 마지막 시즌이 됐으며, 정삼흠은
1996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결국 1997년을 앞두고 LG 선발은 완전히 원점부터 시작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나마 이해 중간계투에서 꾸준히 활약했던 투수는 신동수와 차명석이었다.
무엇보다 투수진의 노쇠화가 1~2년 전부터 지적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부진한 기존 전력을 대체할
만한 신진급 투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당초 연세대를 졸업하고 96 시즌에 LG에 입단해야 했던 임선동은 계약을 거부하고 NPB의
다이에 호크스에 가고 싶어서 구단과 시즌 내내 지명권 관련 소송을 벌였다.
또한 4억의 계약금을 받은 신인 이정길은 사이버 투수가 됐으며, 손혁은 시즌 막바지에만 조금
나온 게 전부였다.
타선 역시 투수진의 부진을 만회하지 못했고 대부분 부진했다.
이해 적어도 기대치 이상을 해준 타자는 심재학과 김재현, 송구홍 정도에 불과했다.
방위병에서 제대하며 5월부터 경기에 나선 유지현은 2할 4푼대 타율로 부진했고, 서용빈과
김동수 역시 2할 4푼대 타율로 부진했다.
한대화와 노찬엽은 노쇠화가 더 심해졌으며 한대화를 대체하기 위해 강봉수를 내주고 한화에서
데려온 황대연 역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선진과 최훈재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박준태는 거의 전력 외가 됐다.
조현은 어퍼스윙에서 레벨스윙으로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밸런스가 망가지며 오히려 성적은 더
추락했다. 타선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18 홈런과 함께 잠실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한
심재학의 활약은 위안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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